성경을 읽으며 궁금했던 부분 중 욥기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물론 명확하게 성경에 나와있지만 않지만 자녀를 키우다 보니 자녀를 먼저 보낸다는 슬픔이 얼마나 클지 느껴졌습니다. (현실 부부로 대입시켜보니..) 하지만 그 가운데 주님의 시선이 있는곳 그곳을 보게 되니 나의 슬픔이 가장 큰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알고 나의 교만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며 원망이 아닌 회복의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나는 욥의 부부의 회복이 먼저 이뤄졌다고 본다.
전 부인은 저주를 남기고 고난당한 남편을 떠나고, 어질고 착한 새 부인이 자식을 낳고 천복을 누리는 식의 스토리는 이 이야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욥의 부인은 옳지만 치우쳐 있어 남모를 괴로움을 자신에게 주었던 남편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했다. 참혹한 재앙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서 있으려는 남편을 향해 차라리 죽으라고 했지만, 그 말은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을지 모른다. 자식을 다 잃고 남편을 더 이상 참을 수도, 같이 있을 수도, 쳐다볼 수도 없게 된 이 여자의 무너진 마음을 하나님은 붙들어주셨다.
그녀는 자식들이 모여 있던 곳을 더듬어 찾아가지 않았을까.
폐허가 된 자리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지 않았을까.
울다가 지쳐 쓰러져도 그 자리를 떠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녀의 눈물을 보셨고, 그녀의 통곡을 다 듣고 계셨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지금. 다시 예전의 존귀함을 찾은 남편이 자신 앞에 서 있다.
나라면 어느 때보다 지금, 확 미쳐버리고 누구도 못 말릴 발악을 할 것 같다. 광기 가득 찬 눈으로 남편을 노려보다가 분을 못 이겨, 그가 다시 찾은 명예와 존귀와 생명을 갈기갈기 다 찢어버리려고 달려들었을 것 같다.
너는 다 찾았구나.
그래서 너는 행복하냐. 너는 만족하냐.
너도 죽고 나도 죽어야 하는 때가 왔구나.
더 이상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구나.
여기까지 가고도 남았을 그녀를, 그녀의 깨어진 이 마음을 하나님은 잡아주셨다.
기함하며 나자빠질 것 같았던 맹렬한 감정을, 산산이 부서져 땅 아래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분노를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앙다문 채 머금고만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마음이고 내 감정인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붙들고 계심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멈춰 서 있을 수는 없다. 이길 수 없는 힘에 붙들려 어쩌지도 못하고 자기 앞에 서 있는 남편의 눈을 쏘아보는데, 그도 자기와 같은 눈빛을 하고 같은 감정과 슬픔을 느끼고 있음을 비로소 보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찾은 것도 부끄럽고,
사람들이 예전처럼 대해주는 것도 부끄럽고,
자식들이 다 사라지고 나만 살아 있는 것도 부끄럽다.
회복시켜주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너무나 혼란스럽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고 기대어 울고 싶은 사람은 바로 아내,
나와 모든 것을 함께 겪은 당신밖에 없다.
욥은 눈으로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욥과 아내는 재앙이 닥쳤던 그날 이후, 처음으로 함께 울었을지 모른다.
머금었던 분노도, 참았던 부끄러움도, 기막힌 상실감도 눈물과 통곡으로 쏟아져 나왔으리라.
서로 붙들고 주저앉아 모든 슬픔과 서러움, 아픔과 고통이 마를 때까지 오래오래 목 놓아 울었을 것이다.
욥에게 필요한 건 아내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셨다.
이 부부의 사랑이 온전히 회복됨으로 다른 모든 것들의 회복이 제 가치를 찾아 진정한 감사와 축복이 될 수 있었다. 욥은 다시 가정을 꾸렸고, 그 가정에서 하나님이 이 긴 이야기를 통해 그에게 주고 싶으셨던 은혜로 사는 삶,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삶으로 여생을 마쳤을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말씀대로 한다.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다.
백 년도 넘게 산에서 배를 만들고,
백 살에 얻은 자식을 죽이러 산에 오른다.
어렵게 얻은 아들을 성전으로 보내 혼자 자라게 하고,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
앉은뱅이에게 일어서라고 말하고,
죽도록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찬양을 부른다.
이들은 이 죽을 길을 통해서 살길을 얻었다.
욥의 친구들은 모든 의심을 접었다. 그의 이웃들도 모두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욥 부부도 다시 삶을 이어가며 자식을 낳고 기르며 웃음을 찾고 행복을 찾았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마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모두에게 새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랑으로산다>최에스더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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